[임용민 종교칼럼] 반역자 아들과 탕자 아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을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었더라."(삼후 14:25)

성경 기록상, 다윗 왕에게는 사울왕의 딸 미갈 공주를 비롯하여 밧세바까지 8명의 아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여러 아내들을 통하여 19명의 아들과 그 외에 딸들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많은 왕자들은 결국 그 가문에 화근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여러 아들 중에 중심적 인물은 결국 압살롬과 솔로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야심 많고 천하의 빼어난 미남아였고 다른 하나는 천하의 비교될 자가 없는 지혜자였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대조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출중한 미남 왕자는 유다와 이스라엘 역대 왕조들 가운데 유일한 반역자라는 역사를 남겼습니다.

반면에 천하의 지혜자였던 솔로몬 왕자의 어머니 밧세바는 본래 다윗 왕 자신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였으나 남편 우리아가 출전 중에 다윗은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다가 불륜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같은 사건은 그녀의 임신으로 인해 더욱 복잡한 사태로 전개됩니다, 다윗은 이 같은 자신의 죄를 가려보려고 갖은 애를 써보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결국 밧세바의 남편을 전투장의 사지로 몰아 그를 죽게 하는 비열한 죄까지 더하게 됩니다. 결국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는 죽게 되었고 다윗은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추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죄를 회개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같은 다윗을 용서하여 회복시켜 주셨으며(시편 32편과 51) 또한 그들을 어여삐 여기사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여디디야(*여호와의 사랑을 입음)라는 이름의 아들 솔로몬을 주셨고 그가 다윗의 왕위 계승자가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전 건축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밧세바와의 사건은 엄중한 하나님의 징계가 따랐습니다. 왕자들 중에 불미한 사건과 그로 인한 살인 사건이 연이었습니다. 장자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강간하는 불미한 사건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분개한 다말의 친 오라비 압살롬은 결국 암논을 살해하는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아버지의 낯을 피하여 모친 마아가의 친정인 그술 왕 달매에게로 도망하여 피신하던 중 3년 만에 아버지의 허락으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기는 했으나 왕은 여전히 그를 영접하지 않았고 왕궁으로 받아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심히 실망한 압살롬은 마침내 병사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날마다 성문으로 나아가 왕에게 송사하기 위해 찾아오는 백성들을 자신이 가로채 그들을 대신 치리해 주면서 점차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반역은 이처럼 서서히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다윗 자신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의 섭리였습니다. 결국 압살롬은 3년 째 되는 해에 헤브론으로 올라가 그 스스로 왕으로 칭하고 드디어 부친 다윗을 향해 반역을 결행하게 됩니다.

결국 다윗과 신하들은 다급히 왕궁을 떠나 피신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압살롬의 반역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에 대한 징계는 거기까지였고 죽는 날까지 결국 그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버림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압살롬의 반역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그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반역자 아들의 죽음은 그 아버지의 마음을 한없이 슬프게 했습니다. 비록 자신에게 큰 치욕과 고통을 안겨준 그 반역자 아들이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었을 때 "왕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후 19:4)라고 그의 비통함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죄인의 불행한 최후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새삼 일깨워줍니다( 6:5-6).

반면에 신약에서는 그 반대의 아들을 대비시켜주고 있습니다. 바로 탕자 아들의 스토리입니다. 그 아들 역시 그의 생애에 잘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으며 아버지를 거스리며 슬프게 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그 같은 마음을 아랑곳 하지 않고 탕자는 적지 않은 자기 몫의 유산들을 모두 취하여 지체하지 않고 그는 아주 먼 타국으로 달려가 허랑방탕한 생활을 시작합니다. 탕자(prodigal)라는 라틴어 프로디게레((prodigere)란 낭비자(waste)란 뜻입니다. 낭비 중에서도 가장 가치 없는 일에 낭비를 의미합니다. 무분별하고 무질서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소중한 유산을 온갖 향락으로 탕진한 동생을 그 맏형은 '창기와 함께 먹고 마시며 낭비한 자'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재물을 낭비했을 때에야 그는 사랑의 아버지와 그 집을 회상합니다. 결국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는 가장 올바른 선택을 결정합니다. 죄를 회개하며 비틀거리며 다시 돌아올 때 이 같은 탕자 아들을 먼저 발견한 아버지는 달려 나아가 그 아들의 입을 맞추며 영접하는 아버지는 우리 죄인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영접해 주시며 기쁨으로 맞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의 표상입니다. 결국 반역자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지극히 슬프게 하는 아들이 되었고, 마침내 회개하고 다시 돌아온 탕자는 결국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아들이 된다는 소중한 영적 진리를 새삼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반역자 아들이거나 회개한 탕자 아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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