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욕개미창과 막현호미

[한희철 목사] 

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합니다.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한 해를 마감하며 그 한 해의 의미를 사자성어에 담아내고 있는데,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정리하는데 좋은 거울이 되어줍니다.

2022년 설문에 참여한 935명의 교수 중 476명의 지지를 받아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힌 것은 ‘과이불개(過而不改)’였습니다.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에서 유래된 말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참여한 교수 중 50.9%가 공감을 했으니,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어떤 모습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느새 오늘의 세상은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를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몰염치가 오히려 무기처럼 된 세상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소인배적 태도, 후안무치가 고스란히 담겼다 싶어 민망하기도 하고 마음이 괴롭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많은 공감을 얻은 사자성어는 ‘욕개미창’(欲蓋彌彰)이었습니다. 낯선 말이어서 그 뜻이 무엇일지 짐작이 되질 않았는데, 하고자 할 욕, 덮을 개, 미륵 미, 드러날 창, 한 자 한 자 뜻을 듣고 나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잘못은 감추려고 할수록, 덮으려고 할수록 더욱 드러난다는 뜻이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힘으로 말을 못 하게 하자 더 멀리 퍼져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최저(崔杼) 이야기도 욕개미창의 뜻을 돌아보게 합니다. 제나라 신하였던 최저(崔杼)가 임금을 죽이고 허수아비 임금을 세웠는데, 최저가 두려워 아무도 말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은 사실대로 기록을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최저는 사관을 죽입니다.
죽은 사관의 아우가 그 뒤를 이어 사관이 되었고, 그 또한 최저가 임금을 죽였다고 기록을 했습니다. 최저는 사관의 아우마저 죽입니다. 이번엔 사관의 막내아우가 다시 사관이 되었고, 그 또한 최저가 임금을 죽였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자 최저는 더 이상 어쩌지를 못하고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춘추시대에는 임금을 죽인 신하가 한두 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대로 기록한 사관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묻힐 수 있었지만, 감추려 했기에 오히려 최저의 이름이 역사 속에 크게 남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욕개미창’이라는 말은 ‘막현호미’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중용》에 나오는 ‘막현호은 막현호미(莫見乎隱 莫顯乎微)’라는 구절로, ‘감추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내는 수 없고 숨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욕개미창’과 ‘막현호미’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모순되어 보이는 것으로 오히려 서로의 뜻을 명확하게 해줍니다. 잘못과 불의는 덮으면 덮을수록 더 크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선행과 미덕은 다릅니다. 감추면 감출수록 더욱 드러납니다. ‘욕개미창’과 ‘막현호미’를 바꿔 생각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그야말로 ‘과이불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