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환상적 착시의 향연

[이규섭 시인]

헬기를 타고 마술사가 무대에 등장한다. 허공에 뜬 철제 상자에 미모의 여성이 들어가 눕는다. 작은 구멍 사이로 손을 움직여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철판을 철제 상자 앞으로 밀어 압축한다. 살아있다면 호떡처럼 납작해질 것이다. 가림 천을 흔들다가 살짝 드니 여인은 무대에 나타나 인사를 한다. 박수와 환호가 쏟아진다.

철제 상자 안에 여인이 눕는다. 이번엔 압축이 아니라 커다란 칼로 세 토막을 낸다. 음악이 굉음처럼 쏟아지고 가림 천을 들자 여인은 관중석에서 일어나 손을 흔든다. 전광석화 같은 순간 이동 퍼포먼스다. 파워풀하고 다이내믹한 환상적 착시의 향연이다. 마술사는 관객을 속여야 하고, 관객은 착시현상과 트릭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찾아내려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긴장감이 팽팽해진다.
평소 마술(魔術·magic)을 좋아하지만 대형 무대에서 펼쳐지는 스테이지 매직의 진수와 만난 건 처음이다. 비둘기와 카드를 활용한 브라운관의 마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문짝밖에 없는 작은 나무상자에서 삽과 사다리 등 커다란 도구들이 비현실적으로 나온다. 어린이를 무대에 올라오게 한 뒤 공중부양을 하고 로켓을 타고 우주로 향하는 상상의 꿈을 펼친다. 상상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과 화려한 영상, 눈을 뗄 수 없는 퍼포먼스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마술사 이은결의 23년 마술 내공이 집약된 스케일이 큰 공연이다. ‘매직 엔 일루션(MAGIC & ILLUSION)’ 공연은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흥미를 끈다. 그는 마술사라는 호칭보다 ‘일루셔니스트’라고 불러주기를 바란다고 한다. “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닌 마술로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소망을 무대에 녹아냈다.
그는 국제마술대회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쥐며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2006년 국제마술대전(FISM)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에 한국 마술의 위상을 높였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깔끔한 무대 매너가 돋보인다. 전반부의 다이내믹한 마술쇼가 후반부에도 나타나기를 은근히 기대했으나 기대로 끝났다.
이은결의 이야기가 영상으로 이어지고 영상은 다시 마술로 이어지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어른들에게는 순수했던 어린 날의 추억으로, 어린이들에게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감성과 환상에 빠져들게 한다.
그의 손놀림은 현란하다. 하이라이트로 장식한 ‘핑거발레(Finger Ballet)’와 ‘일루션 오브 아프리카(lllusion of Africa)’는 그동안 얼마나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훈련을 쌓아 왔는지를 실감케 한다. 어렸을 적 손가락으로 어설프게 만들었던 그림자놀이가 떠올랐다.

자유자재로 리듬감 있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핑거발레는 눈으로 따라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빠르다. 노을 지는 아프리카 영상을 배경으로 빛을 이용하여 손가락 그림자를 만들어 선보이는 ‘일루션 오브 아프리카’는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토끼가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고,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형상을 실감 나게 연출한다. 손가락으로 펼치는 이야기가 담긴 영상이다.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환상의 향연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