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민 종교칼럼]-[얼굴의 수건을 벗으라]

[얼굴의 수건을 벗으라]

갈라디아서신서를 가리켜 '영적 자유의 대헌장'(Magna Carta of the Liberty)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하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5:1) 바울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8:32).

  이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정죄와 노예상태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친히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모든 죄로부터 우리의 구속을 성취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저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느니라." 말씀합니다( 1:13).

이제 그 무엇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더 이상 억매거나 다시금 정죄할 수 없습니다( 8:1).

  예수님과 사울은 생전에 만나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를 배척하며 교회 핍박의 선봉장이었습니다. 그 같은 그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회심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토록 자신이 부인하던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직접 듣는 순간 그는 주님 앞에 완전히 자신을 굴복했고 그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했습니다( 9:1-22).

  이 같은 서론적 이야기들을 염두에 두고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찾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빕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명의 돌비를 들고 하산할 때 산 아래 그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 분향하며 제물까지 드리고 먹고 마시며 큰 소리와 함께 춤까지 추고 있었습니다. 이제 격노한 모세는 계명의 돌비를 아래로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같은 사건에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았던 레위지파를 따로 세우고 그들로 다른 동족들을 칼로 살해하도록 명합니다. 그 날에 약 3천명이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32:28).

그리고 모세는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데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리시옵소서."( 32:32)라고 중보 기도합니다.

  그 후 하나님의 명을 따라 모세는 새 돌비를 만들어 가지고 시내 산 위로 올라가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계명의 돌비를 들고 다시 내려왔을 때 백성들은 놀랍니다.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자신은 깨닫지 못하였더라."(. 34:29)

이는 신약시대 우리들에게 주는 놀라운 영적 진리가 됨을 바울은 이처럼 말씀합니다.

  "오늘 날까지 모세의 글(특히 모세오경)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5-17)

  첫째로 히브리서는 모세와 그리스도를 이처럼 대비시켜 말씀합니다.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의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느니라."( 3:5-6) (a servant)과 아들(a Son)의 근본적 차이를 강조합니다. 또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한은 말씀합니다( 1:17). 

  둘째로 모세의 직분은 '정죄의 직분'(the ministry of condemnation)인 반면 그리스도의 직분은 '의의 직분'(the ministry of righteousness)이라 강조합니다(고후 3:9). 이는 율법과 은혜의 복음의 근본적 차이를 의미합니다. 율법은 하나님 앞에 우리 죄의 고소자 역활이라면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하나님 앞에 우리를 의롭게 하는 역활을 합니다. 때문에 모세의 율법은 곧 '정죄의 직분'이며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은 우리 죄인을 의롭게 하는 '의의 직분'이 됩니다.

  셋째로 모세의 영광은 '없어질 영광'이라면 그리스도이 영광은 '영원한 영광'입니다(고후 3:11).

또한 모세가 영원하지 못한 것처럼 그의 직분도 영원하지 못하지만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심으로 그의 직분도 영원하십니다( 8:23-25). 이는 우리의 구원은 결코 율법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는다는 분명한 진리를 깨우쳐 줍니다.

  넷째로 모세로 말미암는 첫 언약도 피로 말미암는 언약이며 그리스도 안에 새 언약도 피로 말미암는 언약입니다. 그러나 근본적 차이는 '첫 언약'은 짐승들의 피로 세운 언약이지만 '새 언약'은 흠 없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언약입니다(벧전 1:18-19, 9:12-15). 예수께서는 친히 만찬의 잔을 들어 감사하고 나눠주시며 "이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의 피라" 말씀하셨습니다( 22:20).

  다섯째로 영광의 본체의 차이입니다. 모세 얼굴의 광채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 빛에 의한 일시적인 반사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의 광채는 빛의 본체로서의 영원한 영광의 광채입니다( 17:2). 그리고 바울은 이 같은 "그리스도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루 4:6-7)라고 놀랍게 말씀합니다.

  이 것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소유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놀라운 신분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날 마침내 우리는 완전한 구원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찬란한 최종 영광의 구원(Glorification)입니다( 3:20). 그러므로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는 말씀합니다(벧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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