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온정의 김밥’ 세상에 남기다

[이규섭 시인]

‘긴 밤 / 기인 밤 / 배 / 고 / 파/ 기일다 / 까만 밤 / 기 / 일 / 다 / 김난다 / 배 / 고 / 파 /김밥 / 기인 밤 / 짧다.’ <이해웅 시 ‘긴 밤’ 전문>

김밥을 노래한 형식이 독특하다. ‘긴 밤’에서 ‘길다’는 이미지와 ‘까만 밤’의 검은 이미지가, 허기진 밤 길고 검은 김밥으로 변주된다. 그 ‘김밥’으로 인해 ‘기인 밤’이 ‘짧다’고 느껴지도록 배치했다는 게 시인의 풀이다. 

김밥은 국민음식이다. 누구나 즐겨 먹는 나들이 음식의 대명사다.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영양학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김밥은 소풍과 버무려지면서 추억을 소환하는 맛이다. 단무지, 당근, 햄, 게맛살, 시금치, 달걀, 우엉, 어묵 등 색색의 고명을 넣어 눈과 혀가 즐겁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릴 때는 ‘충무김밥’을 즐겨 먹는다. 엄지손가락 굵기의 고명 없는 김밥과 오징어무침, ‘섞박지’라 부르는 무김치를 곁들어 먹으면 바다와 육지의 풍미가 혀끝을 감친다. 김밥의 무한 변신은 무죄다. 삼각, 누드, 김치, 채소, 치즈, 달걀, 태극, 참치, 흑미, 쇠고기, 모둠 김밥 등 종류가 워낙 많아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김밥에 식용 금가루를 묻힌 ‘금밥’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 광장시장은 ‘맛있어 또 찾게 된다’는 의미의 ‘마약 김밥’으로 유명세를 날렸지만 식약청에서 ‘마약’ 용어를 쓰지 말라는 권고에 따라 대체 용어 찾기에 고심 중이라고 한다. 김밥은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아 해외 진출도 늘어나는 추세다. K-푸드의 인기에 편승한 ‘냉동 김밥’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니 김밥의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김밥은 우리들의 삶에 허기를 달래주는 소박한 정서가 묻어있다. 일본의 스시와 달리 김밥은 토막을 내어 여럿이 먹는 나눔의 문화가 서려있다. 김밥을 팔아 모은 돈으로 기부를 해온 박춘자 ‘김밥 할머니’가 95세를 일기로 최근 하늘나라로 거처를 옮겼다. 박 할머니는 마지막 재산인 월세 보증금 5000만 원도 기부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따르면 1929년에 태어나 열 살 무렵부터 경성역(현 서울역) 앞에서 김밥을 팔았다. 일본 순사의 눈을 피해 어렵게 장사했다고 한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아래 살면서 중학교 1학년을 중퇴했다. 6ㆍ25 전쟁 중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 당했다. 1960년 무렵 남한산성 버려진 움막에서 김밥을 팔기 시작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김밥 가게를 열었다. 성남 구 시가지에 사뒀던 집값이 올라 목돈을 손에 쥐게 됐다.  

기부를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다며 3억 3000만 원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 같은 해 장애인 거주 시설 건립에 써달라며 3억 원을 수녀원에 전했다. 평생 모은 재산이다. 갈 곳 없는 지적 장애인들을 데려와 40년간 함께 살았다. ‘LG 의인상’ 상금 5000만 원도 기부했다. “첫 기부 때 말도 못 하게 좋았다”고 한다. 눈물 젖은 빵을 먹고, 배움에 한 맺힌 사람만이 누리는 나눔의 기쁨일 것이다. 김밥을 마는 할머니의 온기가 세상에 전해져 마음이 참 따듯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