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활자의 힘

[이규섭 시인]

‘신문의 날’(4월 7일)이 활자매체의 사양과 맞물려 갈수록 퇴색하고 있다. 기념일 표기가 달력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보건의 날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신문의 날은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된 1896년 4월 7일을 기려 1957년에 제정됐으니 올해 65주년이 된다. 

올챙이 기자 시절 신문사에서의 공휴일은 1년에 어린이날과 신문의 날 이틀뿐이었다. 어린이날 하루만이라도 아이들과 놀아주라는 배려였고, 신문의 날은 생일 격이었다. 달력의 빨간 날과는 무관하게 쉼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신문의 날 명맥을 잇는 행사는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3단체가 주관하는 표어 공모와 간단한 기념식이 고작이다. 올해 표어 공모 대상은 김세진(21) 씨의 ‘신문이 말하는 진실은 검색창보다 깊습니다’가 선정됐다. 신문은 읽으면 읽을수록 문장의 깊은 맛이 살아나고, 다양해진 매체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신문의 힘과 장점’을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강력하게 드러낸 점을 높이 평가했다는 전언이다. 

우수상에는 ‘신문은 가장 안전한 여행이다’(김원석ㆍ62)와 ‘거리두기로 멀어진 세상, 신문이 이어 줍니다’(전금자ㆍ75) 2편이 뽑혔다. 역사가 오늘을 기록할 때 결코 빠뜨려선 안 될 ‘코로나 사태’를 신문과 맛깔나게 연결시킨 점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응모자 세대에 따라 신문을 생각하는 시각과 온도의 차이가 느껴진다. 대상은 상금 100만 원과 상패, 우수상은 각각 상금 50만 원과 상패가 주어졌으며 지난 6일 열린 기념식에서 시상했다.   

퇴색해 가는 종이신문에 활기를 불어넣을 방법은 없을까? 언론인회 최고령인 100세 윤임술 원로를 찾아가 길을 물었다. “활자를 키워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신문 활자가 너무 작아 읽기에 무척 불편해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청소년과 젊은 층은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종이신문을 보지 않는 추세다.

40ㆍ50대는 바빠서 신문을 볼 시간이 없다. 그나마 50ㆍ60대 이상이 신문을 열심히 보는 독자층인데 활자마저 작아 외면하게 된다는 취지다. 활자를 키워 시니어 독자층부터 확실히 파고들면 젊은 층도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종이신문을 찾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우선 오피니언 페이지만이라도 활자를 확대하라는 요구다.   

그는 40년 전 ‘신문활자의 가독성 연구 보고서’를 통해 한국 신문의 활자 사용 실태, 활자 크기의 비교 분석, 일본 신문의 본문 확대 사례 조사, 활자의 확대가 시력 및 눈의 피로에 미치는 영향 등 다각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1945년 신문기자를 시작으로 조선일보 편집부국장, 신아일보 창간 편집국장, 부산일보 사장, 한국언론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금도 일간 신문 세 가지를 구독하고 있지만 눈이 쉬 피곤하여 인터넷 자판 글자를 확대하여 일본의 주요 일간지 사설과 칼럼을 읽는다고 한다. 모바일이 뉴스 검색의 대세라지만 종이신문의 영향력은 막강하고 사회적 역할은 여전히 크다. 전파로 보고 듣는 뉴스와 해설보다, 활자로 읽는 뉴스와 논평은 인지 효과가 높아 오래 기억된다. 그것이 활자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