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재해와 지도자

[강판권 교수]

재해는 국가 지도자의 자질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한 기준이다.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재해를 복구하는 과정은 인간의 몫이고, 그중에서도 국가의 역할은 아주 높다. 자연재해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이 홍수이다. 왜냐하면 홍수는 인간의 터전을 한순간에 휩쓸어버려 복구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가뭄은 서서히 진행될 뿐 아니라 복구도 크게 어렵지 않다.

자연재해의 복구 과정은 국가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왜냐하면 복구 과정은 국가 지도자는 물론 국가의 국민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전통시대 재해에 대한 국가의 정책을 황정(荒政)이라 불렀다. 황정의 대상은 아주 다양했다. 집을 잃은 이재민들의 거처를 마련하는 것부터 생계 지원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했다. 그런데 황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지도자의 황정에 대한 인식이었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국가 지도자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이재민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재민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는 방법은 아주 많지만, 가장 중요한 방법은 자연재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태도는 봉건시대 군사부(君師父)일체의 사상과 맞닿아 있지만, 지도자의 태도로서는 계승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가 재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 재해민들은 지도자가 진정으로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지도자가 재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전통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현대 국가에서 지도자는 국민이 선택하는데도 그런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오히려 정반대의 태도로 지탄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재해는 지도자가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데도 선거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기회를 놓쳐 버린다. 그런데 그들은 다시 선거철이 다가오면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믿어달라고 호소하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전통시대 국가에서는 곡물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서 식물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방법을 찾았다. 식물 중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구한 것을 구황(救荒)식물이라 부른다. 식물은 대부분 인간의 목숨을 구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만, 국가에서는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선택해서 백성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중국의 경우, 가장 대표적인 구황식물에 대한 정보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다섯 째 아들 주숙(朱橚)이 편찬한 『구황본초(救荒本草)』이다.『구황본초』에는 414종의 식물을 삽화와 함께 수록했다. 그중 138종은 기존의 서적에서 참고한 것이지만 276종은 새롭게 수록한 것이다. 아울러 414종 중 풀이 311종, 나무가 103종이다. 『구황본초』는 이후 중국의 식물 연구는 물론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구황본초』에 수록한 식물 중 16종 이상이 일본과 유럽의 식단에 올랐다. 유럽의 경우『구황본초』와 같은 수준의 식물 전문서적이 18세기에 이르러 간행되었다.
우리나라의 참나뭇과 갈잎큰키나무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의 열매인 ‘꿀밤’은 대표적인 구황식품이었다. 돼지의 먹이를 의미하는 ‘꿀밤’은 식물이 인간에게 선사한 선물이자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상징이기도 하다.